[강원도] 오대산 산책
시린 겨울. 눈 덮인 오대산 국립공원.
딱히 등산하려던 건 아닙니다.
그냥 산등성이에서 겨울 향기를 맡아 볼까 하고 오대산 국립공원을 찾았지요.
여기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는 비로봉이라는데,
꼭대기에 오를 생각은 없어요.
아이젠도 스틱도 없이 가벼운 등산화만 하나 신고 설렁설렁 거닐었습니다.
그런데 아무래도 다음에 겨울 산을 올 땐 아이젠 정도는 마련해 와야겠어요.
눈이 얼어서 길이 미끌미끌합니다.
자칫하면 돌 바닥에 발라당 넘어지기에 십상이겠더라고요.
우선 상원사 구경을 합니다.
눈 쌓인 오솔길을 조금 걸었더니 입구가 보이더라고요.
입구 아래 계단엔 얼지 않은 물처럼 파란 표지판이 서 있습니다.
뭐라고 쓰여있나 읽어보았지요.
‘번뇌가 사라지는 길.’
절에 가는 길을 제대로 들었나 봅니다.
단청을 새로 한지 얼마 안 되었는지 알록달록한 지붕이 제 눈을 유혹합니다.
사찰의 지붕이 이리 요란한 것은 유혹에 쉬이 마음이 흔들리지 않도록 단련을 하기 위함이 아닐까요?
상원사를 구석구석 돌아보았습니다.
산을 높이 오를 마음은 아니니 슬슬 내려갈까 하는 참이었지요.
같이 간 일행분이 넌지시 귀띔을 하시더군요.
“여기서 조금 올라가면 멋진 곳이 있어요. 한 오 분 정도 올라가면 되던가?”
뭐 오 분이면 금방이죠.
그래서 능선을 따라 천천히 산을 올랐습니다.
제 걸음이 느린 것인지.
사십 분을 걸어 올라가니 그 멋진 곳이 나타납니다.
적멸보궁(寂滅寶宮)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법당이라는군요.
나무 사이에 아담하게 지어진 모습이 썩 아름다웠습니다.
적멸(寂滅)이라는 말을 처음 들어보았는데, 탐욕·성냄·어리석음이 소멸한 상태. 즉 열반과 같은 뜻이라고 하네요.
이런 좋은 곳에 오니, 더 머무르고 싶다는 저의 욕심이 스멀스멀 고개를 듭니다.
하지만 이 추운 날에 밖에서 한참을 머무른다면 몸이 얼겠지요.
그리곤 곧 화가 일어날 것입니다.
‘아까 내려갈 걸!’
하면서 말이죠.
눈 쌓인 나무를 잠시 바라보곤 발걸음을 돌려 내려왔습니다.
오대산을 떠나기 전에 들른 곳은 월정사입니다.
국보 제48호인 월정사팔각구층석탑이 있는 곳이지요.
저는 이곳의 대웅전이 특히 기억에 남아요.
이토록 크고 웅장한 대웅전은 보지 못했거든요.
안에 들어가 보니, 높은 천장에 용이며 봉황등이 조각된 모습이 멋졌습니다.
그런데 안이 무척 춥더군요.
아무래도 눈이 화려함에 유혹당하지 않으며,
육체는 추위를 극복하도록 단련하는 장소로 쓰이는가 봅니다.
오대산.
눈이 수북히 쌓인 오솔길을 거니는 재미가 있었어요.
다른 계절에도 한번 찾고 싶습니다.